지식산업사

 

설계연도: 2006년
대지위치: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520-12
건축규모: 지상4층
연면적: 797.49 M²
수상:

About This Project

 

조동일의 저술들, 고대사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서들, 의지 없이는 불가능해 보였던 우리말 철학 사전 다섯 권의 완간, 문(文), 사(史), 철(埑)을 아우르는 이 출판사의 지평을 40년 가까이 붙들고 있는 대표는 또 누구란 말인가. 지식산업사의 대표 김경희 선생이 바로 그이다. 이 시대 속에서 지사(志士)의 내음과 목소리가 무엇인지를 단구의 그러나 깊은 호흡으로 단련된 몸으로 보여주는 그이다. 나에게 지식산업사라는 출판도시의 건물은 김경희 선생과의 만남이 그 시작이고 끝일뿐이다. 출판도시의 시작과 함께 건물이 의논되었다. 여러 그림이 그려졌다. 모든 그림들은 행복인 동시에 고통이었다. 여러 해가 흐르고, 채워지지 않은 터는 한 출판사의 부재로 끝날 일이 아니라 출판도시라는 ‘의지’의 한 귀퉁이의 부재(不在)이기도 했다. 열화당 이기웅 선생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각별한 관심으로 다시 설계가 시작되었고, 이제 건물이 세워졌다. 건물과 함께 출판도시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갈 ‘의지’도 바로 섰다.
출판도시에서 나는 한 길을 주목하고 있다. 옛 인포룸에서 시작하여 보리출판사에 이르는 폭 10m, 길이 1km의 길이다. 이 길은 샛강의 풍경에서 시작하여 저수지의 풍경으로 끝난다. 나는 이 길이 출판도시가 도시로 읽혀지는 시금석의 길로 본다. 그것은 이 길에서 도시가 갖추어야 할 일상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출판도시 전체가 진정 애초에 품었던 도시의 꿈에 가까이 다가갔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도시에서 살고 일하는 거주자들이 이제 서로 시민이라 부르기를 권하며)과 방문객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서로의 시선이 부딪히는 그런 풍경, 저녁과 주말이면 또 다른 움직임들이 서로 교차되는 그런 풍경이 일상으로 확인되는 그런 때를 말이다.
지식산업사의 건물이 그 길 속에 있다. 북쉘프(Book Shelf)타입이라는 유형이 산과 강 사이의 물리적 관계를 말하고 있다면 나의 관심은 이 길과 건물의 관계를 향한다. 관계는 건물이 가진 프로그램으로부터 작동되기도 하고 건물이 만들어 낸 장소의 잠재적 힘에 의해 작동되기도 한다. 여러 안들 모두는 그 두 가지를 위한 일관된 노력이다. 비록 아직 최종의 건물이 아니지만 현재로서도 그와 같은 작동의 잠재력을 충분히 기대한다. 기대의 근거는 단순하다. 물러서 있는 빈 공간의 잠재력과 이 장소의 주인이 펼칠 긴 호흡의 여유로움을 믿기 때문이다. 최소의 예산으로 만들어내지만 주인이 풍모가 드러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선택이 건물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유로 폼으로 판형의 구조와 벽을 일치시키는 일, 최소의 필요한 개구부 그리고 훗날 더해질 공간의 예비가 전부다.
이 도시는 이제 그 시작에 있고 눈앞의 풍경은 거칠기만 하다. 건물들은 여전히 그 앞의 가로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다. 때로는 채 준비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 아직은 그저 만들어진 가로, 물리적 공간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이 공간이 우리에게 점점 익숙해지고 일상의 활동과 기억들이 쌓여 나갈 때 비로소 이 길은 차츰 의미 있는 장소로 변화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시간의 과정들을 이 속에 쌓아 나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도시로 나아가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일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란 단지 시작될 수 있을 뿐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오랜 교훈을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단지 그 시작을 도왔다. 이제는 시민들에 의한 기나긴 노력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