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손센터

 

설계연도: 1993년
대지위치: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764-19
건축규모: 지하3층 / 지상10층
연면적: 4,312.39 M²
수상: 1995 김수근문화상

About This Project

 

방배동에 있는 건물 사이트에서 바른손센터가 위치할 대지가 강남이라는 격자 체계 질서와 영등포라는 자연순응체계가 만나는 도시의 커다란 변곡점이라고 보았다. 도시의 커다란 변곡점을 마주한 바른손센터의 대지는 강남의 격자 질서 체계와 영등포 외각의 자연 순응 체계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다. 가로측의 곡선을 응축시킨 커다란 벽과 뒤로부터 삐져나오는 격자 체계들로 구성된 전면 구성의 요소는 이러한 두 질서 체계로부턴 근거하는 결합을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변곡점의 의미를 과장하는 몸짓이다. 한편으로 이 땅은 북한산으로부터 관악산으로 향하는 옛 서울 터잡기의 표상측에 슬쩍 기대어 있다. 옥상정원의 한 곳에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관악산의 모습은 층마다 내어 달린 발코니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경관으로, 그러한 터잡기의 의미에 대응한다. 공사 중에 그렇게 애를 먹였던 지하수의 문제도 한강으로 이르는 관악산의 수맥이 말해주듯 자연 체계에 역행했던 강남의 가로 및 필지 구성에 따른 홍역이라 여긴다. 현재의 가로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상들은 설계 초기로부터 지금의 변화보다도 더 큰 폭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되, 10년 넘게 유지해온 내구성 소비재 상가의 성격을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 장소와 건축물은 스스로의 영역을 공공에 폭넓게 환원시킨 채로 존재하여 그들 변화의 방향에 도시와 건축이 접하는 방법에 대한 제안적, 촉매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도 건물 프로그램상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음으로써 보다 한 걸음 먼저 주변 변화에 적극 대응해 갈 수 있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첫째는 개념의 차원에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바른손센터는 건축물이 도시의 건강하고 유효한 한 부분으로서 그 존재 이유를 얻기 위한 해법으로써 ‘작은 도시로서의 은유’라는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둘째는 형태 언어적인 차원의 완성도를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바른손센터는 여러가지 ‘형태 요소들간의 정합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태의 결구와 개념간의 관계를 꼼꼼하게 읽어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동감하는 즐거움이다. 바른손센터는 건축가의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분명 경제, 합리, 기능이라는 논리를 넘어서서 정서의 논리를 공간에 담아내고 있다. 전자의 논리가 서슬퍼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서의 논리가 가장 상업적일 수도 있다’는 정치적인 입장을 이끌어낸 건축가들의 노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흐뭇하다. 바른손센터의 선례를 통해 이제 많은 건축주들을 설득하기가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천진난만한(?) 기대감과 더불어‥‥‥‥

넷째는 건축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성과에 대한 즐거움이다. 바른손센터의 공간은 엄격히 말해 건축 언어 자체의 혁신보다는 기존 작품들의 선례로부터 – 이를테면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작품과 같은 공간 구성 – 출발하여 자신들의 언어를 잘 구축해냄으로써 서구 건축을 껍데기로 베끼는 수준으로부터 확실하게 일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교육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네가지 차원중에서 첫째, 둘째는 작품의 내재적 조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셋째, 넷째의 경우는 작품 외적인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바른손센터에서 공간의 ‘시작’은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뚫린 곳에서부터 시작’하므로, 안과 밖은 ‘보고’, ‘보이는’ 관계가 생성되고 거기서부터 정위의 문제가 수반된다. 도시와 만나는 대로변 공간의 시작은 정위상으로 보아 좌/우의 경우에는 중심을, 상/하의 경우에는 하부를, 전/후의 경우는 후면을 더 많이 열어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공간의 정위 문제에서 비롯되는 차이의 원인과 결과는 어떠한가?

도시 안에서 건축 공간의 시작은 도시 공간의 끝과 접속되는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바른손센터의 경우 대지 4면 중 대로변으로부터의 시작과 나머지 3면의 주변으로부터의 시작은 서로 다른 스케일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자가 도시 스케일에 대한 대응이어야 한다면 후자는 블록 스케일에 대한 대응이 된다. 따라서 좌/우의 차이는 연속되는 대로변의 대응의 과제이며, 전/후의 차이는 대로와 대지 내부와의 접속의 과제라고 할 수 있고, 상/하의 차이는 도로로부터 눈높이와 시각의 거리에 대한 대응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스케일로 보아 좌/우, 상/하의 차이가 전/후의 차이와는 달리 보다 도시 스케일의 과제라는 점에서 위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좌/우, 상/하의 차이에서 전/후의 차이순으로 문제를 들춰내야 옳다.

이들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픈 공간의 설득력은 다른 주변의 구성 요소와의 상관 관계에서 정합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난다.

1. 좌/우의 차이에서 중심 부위를 오픈한 것은 그곳이 바로 도로의 변곡점으로서 입면의 연속/불연속의 변별의 효과가 가장 큰 곳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2. 중심이 오픈되면서 좌/우, 전/후에는 대별하자면 3개의 소규모 매스 덩어리로 잘게 분화되어 개개의 매스는 독립성을 유지하는 윤곽을 갖게 되는데, 이는 대지를 둘러싼 나머지 세 면의 필지 규모에 따른 건물의 규모와 유사하게 대응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다.

3. 소규모 매스들 간과 주변의 기존 매스 간의 사이 공간은 채워진 실체로서 파악된 것이며, 그 윤곽은 분명 디자인된 것임이 설명된다. 4입면이 모두 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4. 이로써 대지에 매스를 앉히면서 좌/우, 전/후로 커다랗게 3켜로 썰어낸 이유(9분할 평면)가 설명이 된다. 그 결과 3켜 중 좌/후의 켜는 서비스켜의 성격을 유지하고, 중심은 우측의 서비스 받는 공간켜를 연계, 접속하는 성격을 유지한다. 켜는 각 층 평면 구성에서 공간의 성격 분화와 위계를 조정하는 기능을 하며, 이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주구조(primary structure)가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5. 대로변 입면이 매스의 한 부분으로서 종속된 면의 결과로 나타나지 않고 매스로부터 독립된 곡면들의 결합으로 나타난 것은 전/후의 스케일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것이지 유행하는 형태의 유희라고 볼 수 없다. 전면(도로 스케일)에서는 면으로서 대응해야 하고 후면(블록 스케일)으로 보아서는 소규모 볼륨으로 결합되어야 하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된 형태 언어라는 것이다.

6. 전면 파사드의 H빔과 남측면의 발코니가 첨가된 것은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이거나 가능상의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소규모 매스가 도로 스케일에서 한몸으로 읽혀져야 하는 이유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결국 중심 부위의 오픈 공간의 정위 문제로부터 연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 도로변 3층 바닥 슬래브의 전면 켜를 프레임으로 노출시킨 것도 상/하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를 표현한 의도로 읽혀진다.

 

바른손 센터의 개방공간의 짜임새

1. 지상 1층에서 중심 부위의 크기가 좌/우 켜보다 상대적으로 큰 것은 전/후/좌/우/상/하의 정위의 근거로 작용하기 위한 자기완결적 요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중심 후면에 위치하는 지하층 부분의 인지도 확보는 바로 전체 정위의 관건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2. 요컨대 오픈 공간의 가장 중요한 ‘쓸모’는 가장 ‘쓸모없음’의 명료함 – 온몸으로 마개가 되어있는 구멍을 상상하라 – 에서 얻어졌다. 즉, 단순한 용도를 지니는 공간으로서보다는 전체의 인지도를 높이는 베이스 맵과 같은 의도에서 찾을 수 있다 단면상으로도 오픈공간이 그 크기나 윤곽으로 보아 가장 예외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평면적으로 오픈 공간은 대로에 수직으로 접합된 길로서 가장 공적 영역의 성격을 명료하게 지니게 된다.

3. 오픈 공간은 각 부위별로 주변의 형태 요소와 미세한 대응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2층 중앙에 45도로 틀어진 녹슨 벽의 위치와 크기와 방향의 선택에 의한 긴장된 짜임새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오픈 공간을 주로 전/후 방향이 우월하게 했으면서도 후면이 보이지 않도록 벽으로 닫은 것은, 궁극적으로 후면 필지에 위치한 두 개의 매스가 시각적 조건으로 보아 이러한 벽이 없을 경우, 옥외 공간이 강하게 갖고 있는 방향성의 종점에 놓일 만한 가치를 전혀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에 기인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결과로 후면에 위치한 선큰 플라자의 공간 윤곽이 수직 방향으로 그 초점을 바꾸고자 하는 의도와 맞물려 있으며, 바로 우측의 주차 타워의 수직적 볼륨의 윤곽과 상호 모순되지 않는 짜임새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틀어진 벽의 방향은 좌/우, 전/후 켜 사이를 잇는 동선을 4방향이 각기 다른 공/사 성격의 뉘앙스 차이에 부합하도록 조절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벽의 존재가 없었거나 제대로 디자인되지 않았다면 (바른손센터)는 단순히 공간 영역을 많이 확보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을 만큼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형태 요소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미세한 변화에 의한 전체 분의 짜임새를 동시에 얻지 못했다면 확보한 오픈 공간은 낭비일 뿐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벽이야말로 오픈 공간을 온몸으로 마개가 되어 있는 만큼 자기완결적인 모습을 띄게 했던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서구 건축의 외형상 베끼는 수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보는 근거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형태 요소의 처리에 있다.

 

효용론적 층위 : 시작/끝의 경험문제

1. 짜임새에서 설득력을 갖춘, 오픈 공간의 시작은 1층 레벨에서 좌/우 켜의 인지도를 보다 극명하게 하기 위하여 2층으로 향(수직 상향)하는 좌측의 동선과 지하 1층으로 향하는 우측의 동선을 분리하면서 지상 1층에서 오픈 공간의 주된 방향(수평 하향) 이 지하 공간으로 향하도록 계단의 폭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 좌/우측 동선의 차이는 곧 공공 성격의 뉘앙스 차이를 수반한다.

2. 2층의 45도 비켜선 녹슨 벽면은 지하 1층에서도 연속되지만 하부가 절단되어 있는데, 이는 수평 하향의 깊이감을 해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3. 1층 주차 타워와 좌측 서비스 타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가로지르는데, 이는 단순한 기능상의 연계뿐만 아니라 지하층으로 공간의 깊이를 창조하게 함으로써 지하로 향하는 방향의 관성을 강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4. 동선 요소로서의 다리의 위치는 또한 지하 공간으로의 관성을 강화해 주면서도 1층의 눈높이나 시각 거리상으로 보아 후면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노출하지 않는다는 사실때문에 후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5. 다리 하부에 나타나는 계단은 오픈 공간의 전/후 방향과 평행으로 최대로 멀어졌다가 지하 3층의 오픈 플라자의 중심 방향으로 되돌아오는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오픈 플라자에 ‘끝’까지 다다르는 방식의 선택은 그 공간의 윤곽에서 보이는 수직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정합적인 선택임에 분명하다. 사옥 상부의 본체와 주차 타워 사이의 간극이 다시 중하게 감지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6. 이들 계단의 결합은 동선이 길다는 사실을 간과만큼 시작과 끝을 끊임없이 암시하고 보상해주며 오픈 플라자를 정의해 주는 주변의 형태 요소를 동선 경험의 주요 대상이 되도록 그 위치와 방향이 조절되어있다. 동선의 상호 결합과 조절은 자기 완결의 회로로서 다양한 공간의 시작과 끝을 험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에 상응할 만큼 공간 읽기의 즐거움을 부여해 준다.

7. 공간 경험의 끝은 또한 시작이다. 오픈 플라자에서 지상으로 되돌아 나가는 경험을 축적인 장치들이 상호 조절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는 자세히 기술하는 것을 생략하기로 하고 독자의 몫으로 돌리는 것도 무방할 듯하다.

8. 한가지, 아쉬운 것은 다리에서 커피숍에 이르는 계단은 기능과의 타협의 결과로 보여 오히려 긴 공간 여정의 끝에 다다르는 경험의 기회와 즐거움의 강도를 상대적으로 희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오픈 플라자쪽으로 매어 다는 것 보다는 45도 기울어진 녹슨 벽면의 배후와 지하 1층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으면 어떠했까 싶다. 실제로 녹슨 벽면의 전면은 오픈 스페이스에서 독립된 오브제로 기능하고 있는 반면에 후면은 2층 팬시 상점(현재는 접견실)의 한 벽면을 막고 있는 정도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점에서 그러하다.

공간을 읽는 즐거움이란 공간이 자기 존재의 정위성을 근거로 하여 (존재론적 층위) 자기 완결의 회로로서 (형태론적 층위) 스스로의 ‘끝’을 확인하는 과정(효용론적 층위)에 매설되어 있는 ‘의문의 덫’을 들추어 내어 원인과 결과의 상호 정합성을 발견해 내는 가운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