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평화박물관

 

설계연도: 2010년
대지위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683-3번지 일원
건축규모: 지하1층 / 지상2층
연면적: 1,891.75 M²

About This Project

 

노근리 역사 평화박물관 – 노근리 사건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150인이 숨졌다. 13인의 행방을 모르고 55인이 다쳐 장애를 얻었다. 1950년 7월 26일에서 29일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들도 정확치 않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흘 밤낮 동안 쌍굴 다리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생사를 갈랐다. 반세기가 흘러갔다.

아무도 책임을 말하지 않았다. 진상도 알 수 없었다. 사건은 분명 있었으되 어디에도 없었다. 수천의 유족들은 위패 없는 제사를 올려야만 했다. 유족 일부의 끈질긴 노력에도 진실은 재구성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은폐되기도 했다.

전쟁의 비극, 우발적 사건이라 했다. 다른 피해들과 묶어 위무되려 했다. 그러나 속속 드러난 기록들이 입을 열었다. 노근리 이곳에서의 사건이 결코 전쟁이란 큰 비극 속에 묻힐 작은 사건이 아님을. 특별법이 공포되었고 위령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진실은 아직 멀다.

노근리의 사건은 역사로 말해지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이 남겨져 있다.
평화를 말하기에는 여전히 주체와 대상이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오직 희생자들의 공포와 유족들의 크나큰 고통뿐이다.

집단기억
노근리의 사건이 우리의 표면으로 떠 오른 것은 오로지 유족들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들의 활동이 있었다. 그로인해서 역사적 기록의 조각들이 드러났을 뿐이었다. 그 기록의 조각들을 앞에 놓고도 정확한 사실은 역사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한 일들은 자전적 기억에 속한다. 역사적 기억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기억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노근리의 기억은 여전히 활동적인 과거다. 그러기에 단지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 구축해 나가는 집단기억의 과정에 속할 일이다.
하지만 집단기억의 과정에는 사건을 둘러싼 욕망들 사이에 어떤 긴장이 놓여있게 된다.
국가기관들, 피해의 당사자들 그리고 관찰자들의 욕망이 있다. 보편의 사회적 기억으로, 생애의 자전적 기억으로 그리고 인류의 교훈적 기억으로 갈린 긴장이 있다.
긴장의 상태가 정리되지 않은 노근리에서 ‘역사’와 ‘평화’를 말하는 공원은 아직 불안정하다. 또한 ‘역사’와 ‘평화’를 말해야 하는 박물관은 공허하게 시작될 수 밖에 없다.
공허하게 시작되는 건축은 집단기억으로 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축이다.

 

반 기억
공식화된 역사에 대항하는 기억을 ‘반 기억’이라 부른다. 반 기억은 개개인의 경험이자 파편화된 기억이다. 자칫 제도화 되려는 기억의 틈새를 비집고 개입하려는 기억이다. 섣부른 기념비와 추모의 상징이 가진 공식적 기억의 아우라를 벗겨내는 기억이다.
‘반 기억’을 세우는 일에는 개인의 체험이 중요하다. 특히 그의 몸에 각인되는 체험이 소중하다. 그럴 때의 체험은 정지된 곳으로부터의 시각을 넘어 움직이는 육신에 가해지는 공간성이 우선된다.
노근리 사건에 대한 집단기억의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역사평화박물관’에서는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 온전한 역사도 누군가를 향한 평화도 아직은 외칠 수 없다. 시간을 두고 공식화되려하는 어떤 역사를 오랫동안 지여시키려 할 뿐이다.

현재진행형의 집단기억 과정을 지켜보아야 하는 ‘노근리 역사평화박물관’은 ‘반 기억’의 건축이 되려 한다. 그것은 방문자의 몸에 공간으로 개입하려 건축이 되려 한다. 그 개인의 개별적 체험이 누적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 묻는 건축이 되려 한다.

 

근리 역사 평화박물관 – 건축

 

널따란, 하지만 그다지 의미를 찾기 힘든 역사평화공원 내에 한조각 박물관 부지가 주어져 있다.

 

고민과 재조정
박물관 위령탑 그리고 사건의 현장(쌍굴주변)은 위치상 그리고 의미상 더 없이 긴밀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 즉 기존의 계획안은 세가지 요소중 사건이 환기하는 잠재적 의미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방문자의 실제적 경험이 되어야 할 장소로서 주어진 대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몇가지 풍경을 조정하는 것을 제안한다. 박물관은 그러한 풍경속에 하나의 부분이 될 것이다.

기존계획

제안

시작 – 방문객 센터와 게이트
다양한 수단으로 도착한 방문객들은 낮은 천장을 가진 게이트에 서게된다. 오른 편에 이어지는 벽을 따라 나아갈 길이 보인다. 그리고 반사연못 저편에 박물관이 서있다. 방문객 센터는 나오는 길에 들릴 일이다.

 

물 – 반사연못
앞으로 나아갈수록 물이 더 넓다. 그리고 박물관이 더 비추인다. 철길과 쌍굴다리의 현장은 아직 멀고 밀식된 나무들로 짐짓 가려있다.

 

서서히 내려가는 길
벽을 따라 수면 아래로 점차 내려간다. 저 앞쪽에 물이 떨어지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내 박물관의 입구에 도달한다.

 

입구 홀
친절한 안내가 따르지 않아도 갈길을 선택할 수 있다. 영상이 있는 방을 들려도 좋으며 꺾인 벽으로 안내되는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도 좋다.

 

전시공간 1
오로지 ‘사실’(fact)들만 열거된다. 개전 초기의 당황스런 상황들, 군사적 기록, 피난 또는 강제 소개령 등을 배경으로 영동읍의 주민들이 겪은 사건 직전의 상황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노근리 사건의 사실들이다.

 

터널전시
쌍굴 다리의 공포와 고통을 복원하는 어두운 통로다. 그러나 복원은 가능하지 않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예술이 그 복원을 가능케 할 수 있을 뿐이다.

 

전시공간 2
갑자기 공간의 반전이 있다. 공간이 굴절되고 밝아지며 오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점차 넓어진다. 아무것도 애써 전시되지 않는다. 벽에 뚫린 구멍에 가까이 귀를 대면 작은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인지 정확치 않다.

 

전시공간 3
집단기억으로 나아가려는 노근리 사건을 지켜보는 공간이다. 사건을 사건화 시킨 모든 노력들이 전시된다. 그리고 현대의 전쟁 속에 스러져 간 여러 나라, 여러 민중들이 기록된다. 그러나 빈칸들이 남아 있어 앞으로 더 기록될 것들을 기다린다.

 

제례의 길
전시공간을 나서면 위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선택적이다. 계단은 위층에 마련된 ‘유족의 방’으로 안내한다. ‘유족의 방’은 바깥으로 한껏 돌출되어 노근리 사건의 현장을 한 눈에 조감 시킨다. 박물관이 방문객에게 전달하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이미 세상을 달리했거나 아직도 남아있는 유족들의 고통이다.

 

박물관의 출구
출구를 나서면 다시 물과 대면한다. 그러나 물과의 사이에는 시선을 가르며 갈라지고 뚫린 고통의 벽이 서 있다. 이 벽을 따라 걸어가는 시선 끝에 조형물이 놓인다.

 

최후의 박물관
지나온 박물관보다, 그리고 맥없이 서 있을 조형물보다 더욱 생생한 사건의 현장이 저 앞에 있다. 광장의 포장은 국도 사호선의 일정 범위까지 연장되어 현장으로 이끈다. 철길, 옹벽의 탄흔들, 쌍굴다리의 바랜 벽들 그리고 그 너머의 무상한 자연이 최후의 박물관으로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어설픈 열차, 캐노피, 안내판 들은 생생한 현장에서 치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