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세계사

 

설계연도: 2006년
대지위치: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521-1
건축규모: 지하1층 / 지상4층
연면적: 2,983.01 M²

About This Project

 

2000년 7월 25일, 파주출판도시 시범지구 마지막 섹터의 섹터 회의가 있었다. 회의는 섹터 내에 속한 각 프로젝트의 회원인 건축주들을 면담하고 그 결과 ‘시범적’인 계획을 준비해서 회원 다수를 위한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자리였다. 개별 필지의 중요성 뿐 아니라 각가의 계획들이 모여 어떤 전체를 구성하게 될 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출판도시의 10년은(그 이전의 세월을 포함해서) 이렇듯 부분과 부분 사이 그리고 부분과 전체 사이에서 수많은 대화들이 오가고 도 그만큼의 적지 않은 갈등들이 쌓이며 조율되는 그런 과정이었다.
2007년 5월 2일, 파주출판도시에서는 출판도시 1단계 완공기념 세미나 ‘이 시대, 파주출판도시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라는 긴 이름의 세미나가 있었다. 완공이라…. 하나의 도시가 완성된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지, 아니 오히려 도시를 만든다는 말이 가능한 일인지……. 세미나의 한 발제자인 나는 심술궂게 이 말에 시비(?)를 거는 것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그리고 도시는 다만 만들기 시작할 뿐이며 지금이 그 시작이고 또 시작은 건축가들이 했으되 이제 건축가들은 소멸되어 갈 것이라 말했다. 앞으로 이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이 도시를 살아 나가고 있는 여러분들, 이제까지는 서로 ‘회원’으로 불리었을 것이나 이제 서로 ‘시민’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한 여러분들의 몫이라 힘주어 말했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애당초 파주출판도시는 백지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생산과 물류가 그 중심이 되는 공업단지의 구조가 있었다. 그 공업단지가 출판도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생산과 물류 대신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리 되기 위해서 ‘건축적 정책’들이 동원되는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 뒤를 따랐다. 그 과정 중에 건축가들이 개입되었고 이제 웬만큼 역할을 다 해가는 건축가들은 서서히 이 장면으로부터 소멸되어 나가면 충분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계속 지켜보고 싶은 영역이 있다. 폭 10m에 길이 약 1km에 달하는, 강변 자유로에 평행하며 길 양 옆에는 15m 높이로 제한 된 북쉘프 유형의 건물들이 늘어선 영역이다. 인포룸으로 시작했던 건물로부터 내가 설계한 또 다른 프로젝트인 보리출판사로 이어지는 긴 길이다. 샛강의 풍경에서 저수지의 풍경으로 끝나는, 지금 이름을 구하고 있는 길이다.
파주출판도시가 진정 ‘도시’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이 길에 일종의 시금석의 역할을 맡기고 있다. 시금석이란 다름 아니라 우리가 이 길에서 도시가 갗추어야 할 일상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러한 때를 말한다. 시민들과 방문객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서로의 시선이 부딪히는 그런 일상의 풍경, 저녁과 주말이면 이 곳에 또 다른 움직임들이 교차되며 만들어지는 그런 풍경이 확인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출판도시 전체는 진정 애초에 품었던 도시의 풍경에 가까이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길이라는 생각이다.
음악세계사는 바로 그 길에 면한 북쉘프 유형의 프로젝트다. 높이는 4개층으로 되기 십상이다. 이 프로젝트로부터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대지 바같 쪽의 넓은 길이 아니라 안 쪽의 바로 이 10m의 긴 길과 시설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근의 프로젝트들은 가로와의 대화라는 관점에서 아직 거칠다. 건축을 향하는 풍경은 있으되 가로와 사람으로 구성되는 풍경은 아직 기대와 멀다. 오래 전부터 말해왔다. 적어도 그 관점에서 당초의 기대와 먼 풍경이 예상되는 것은 이 도시와 이 가로를 시작시키고 있는 건축가들의 책임이 크다. 아직 다 완성 짓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더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음악세계사는 이 길로의 열림이 자주, 반복적으로 구성되기 위한 노력들이 들어있다. 입구의 과제, 내부 동선의 흐름에서, 미리 설정된 녹색회랑(그린 코리더)의 처리에서 그러하다. 흐름이 연속되고 가능한 한 그 흐름이 개방적 이려는 노력이 또한 그러하다. 어찌 보면 그것들이 전부다. 연결되는 공간의 구성은 보리출판사의 그것에서 연속된다. 외벽을 통어하는 목재 널의 표피는 같은 건축주의 헤이리 아티누스 작업에서 연속된다.
이 도시는 아직 그 시작에 있고 눈 앞의 풍경은 아직 거칠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 이 공간이 점점 더 익숙해지고 일상의 활동과 기억들이 쌓여 나갈 때 비로소 이 곳은 차츰 의미있는 장소로 변화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시간의 과정을 이 길 속에 그리고 이미 시작된 도시 전체에 쌓아 나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도시로 나아가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일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란 단지 시작될 수 있을 뿐 단숨에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오랜 교훈을 우리가 익히 잘 알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은 이 도시는 이제 이 도시의 시민이 된 출판인들의 기나긴 노력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