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분원백자관

 

설계연도: 2003년
대지위치: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116
건축규모: 지상2층
연면적: 411.04 M²

About This Project

 

과거 도자기를 굽는 일은 당대의 하이테크 산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관요는 철저한 제도아래 관리되었다. 중앙에는 사옹원이 있었고 도자기를 굽는 현장에는 분원이 설치되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경기도 광주에서 분원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곳이다. 한강의 수계로부터 좋은 흙과 땔감이 공급되었고 만들어진 도자기는 역시 한강을 통해 도읍으로 운반되었다.

어느 곳을 파 보아도 파편이 나오고 그럴싸한 곳을 더 파보면 가마터인 듯, 온 사방이 도자기와 관계 맺지 않은 곳이 없는 듯싶다. 특히 그 핵심 지역인 분원의 이곳은 백여 년의 지난 세월 동안 학교 터로 둔갑하고 강변의 붕어찜 집들로 뒤 덥혀버렸다. 하지만 그 사이 꾸준한 발굴이 있어 점점 더 이곳 분원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발굴은 앞으로도 더 긴 시간 계속될 예정이기에 경기관광공사에서는 그 과정 중에 발굴에 얽힌, 그보다는 이 지역에 얽힌 사연들을 소박하게 알리고 가꾸어 나가기로 했다. 해서 일차 발굴이 끝난 터를 다시 흙으로 덮어 봉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폐교 하나를 일종의 홍보관인 분원 백자관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과제는 기존 폐교를 전시관으로 바꾸어 내고 그 주변을 매만지는 일로 시작되었다.

폐교는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소나무 뒤에 네 칸의 교실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터에서 한 길 높이 아래로 작은 운동장이 내려 않아 있었다. 우선 영역의 애매한 윤곽을 낮은 구릉으로 감싸 하나의 장소로 바꾸어 내었다. 폐교는 전해 듣기로 옛날 공민학교 였으며 당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직접 지었다고 할 정도로 낡아 있었다. 문화재청과의 약속은 그 실루엣에서 더 하지도 빼지도 말자는 것이었다. 막상 건물의 낡은 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보니 이제껏 수십 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일조차 신통해 보일 정도였다. 곳곳에 철골을 세우고 지붕을 새로 얹기로 했다. 그리 하고보니 외피를 새로 구성하는 일이 난감했다. 벽과 지붕을 같은 재료로 하여 집의 원초적인 모양새를 갖추려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철판일 수도, 또는 밝은 아연판일 수도 있었다.

예산이 허락하는 것은 철판이었고 문득 가마에서 변해가는 철화의 붉은 색이 다가왔다. 도자기와 녹슨 철의 궁합은 사계의 전문가들에서는 낯선 일인지라 몇 번의 논의가 이어졌지만 예의 철화의 비유로 해서 이해를 구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것이 단지 얇은 표피임을 드러내기 위해 철판에 작은 구멍들을 뚫었다. 게다가 철판의 전개도에 이대 박물관에서 발굴해 실었던 이름난(?) 파편의 라인들을 오버랩하고 그 선을 따라 잘라내었다. 흥미로운 것은 도자기가 깨어져 나가는 선은 유리나 기타의 것이 깨어지며 만드는 선과는 다른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 되어버렸다.
현장에서의 조율이 적절히 필요했다. 내부의 교실 바닥을 조금 파내니 부분적인 두 개 층이 만들어졌다. 공간이라면 그것이 다였고 나머진 전시에 관련된 기획은 다른 팀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전시공간을 마련하는 방법이 다각도로 모색되었으며 새로운 시설의 신축도 검토하였으나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서 신축을 위해 땅을 팔 경우 지하매장 문화재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폐교를 활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기존시설의 리모델링이기 때문에 가급적 학교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계획을 하려 했으나 수십년간 방치되어 있어 노후 된 건물은 보강이 불가피했다. 더욱이 많은 이의 이용이 예상되는 전시시설이기 때문에 구조의 안정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를 위하여 기존 구조의 보강을 포함한 세심한 계획이 수반되었으며 이는 건물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조성원칙에도 적용되었다. 건물 주변과 마당을 두껍게 복토하여 유적이 비바람에 휩쓸리지 않게 하였고 사람의 손도 타지 않도록 했다. 학교 주변은 물론 운동장과 구릉지의 모든 영역이 수많은 사금파리로 가득한 소중한 곳이기 때문이다.

보존을 위해 다시 흙으로 덮은 운동장과 단정한 전나무의 열식 그리고 뒷산으로 이어지는 흐름 위에 금속의 외피로 감싸진 매스가 묵묵히 얹혀 있다. 분원을 대표하는 ‘철화백자 용문호’를 상징하며 수장고를 의미하는 덩어리 개념의 단일 매스에 자연스러운 부식과 변화를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하는 재료인 코르텐 강판을 적용하였다. 백자를 이미지를 닮고자 한 외관은 입구부 외에는 다른 개구부를 갖지 않도록 계획하였고 코르텐 강판에 촘촘히 난 구멍은 도자기가 살아 숨쉬듯 느껴지게 하였으며 이 공극을 통하여 인지되는 당초의 외벽은 이 건물이 리모델링임을 짐작케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외벽의 면을 분할하는 강한 사선들은 파손된 백자인 도편을 형상화 한 것으로 그 선은 다른 면으로 계속 이어져 하나의 전개도를 형성하도록 계획하였다.

입구로 들어서면 바닥에 설치된 강화유리 바닥판을 통하여 분원에서 출토된 사금파리들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여 이 곳이 출토의 현장임을 자연스럽게 알리고자 하였다. 내부 공간은 기존 교실과 복도를 없애고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최소한의 공간 변화를 주면서, 사무실, 세미나실 등을 중층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부분은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분원 백자관은 300년 이상 왕가의 도자기를 만들던 터를 재발굴해내고 있는 장소에 세워진 작은 기념 전시관이다. 이 작업은 발주처의 기대처럼 달항아리 백자로 표현되는 옛 도자 유물들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기억되어야 할 것은 그것들을 만들던 터에 각인된 수많은 도공들의 노동과 함께 이곳에서 발굴되고 있는 가마터와 도자 파편들이다. 발굴 터의 특성 상 절대로 남아있는 학교의 윤곽선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다. 또한 이곳을 점유하며 근대식 교육을 시작했던 모든 기억들 또한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전제들이 부러 보존시킨 줄지어선 소나무와 함께 박물관의 외피에 균열과 흔적으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