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

 

설계연도: 2003년
대지위치: 서울시 중구 정동 32-1 이화여자고등학교
건축규모: 지하3층 / 지상5층
연면적: 9,486.65 M²

About This Project

 

하나의 도시적 장소에는 시간의 종축을 따라 겹겹의 사연들이 포개어져 있다. 그들 중 의미를 지닌 것들이 계열화되어 오늘 우리에게 장소의 내력으로 남겨져 온다. 또한 하나의 도시적 장소에는 인공의 환경과 환경 사이에 또는 그것과 자연 사이에 생성되는 현상들이 흩어져 있다. 그들 중 우리의 감성을 파고드는 현상들이 도시의 일상과 결합되어질 때, 그 때 도시의 삶은 비로소 어떤 ‘거주’의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진정한 도시 읽기, 장소 읽기란 이 두 가지의 요소, 그 장소의 내력과 그 장소의 현상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일에 대한 매우 균형 있는 태도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또한 장소에 대한 읽기를 넘어서서 앞으로의 장소에 대한 실천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과제는 그와 같은 균형 있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 더욱 섬세한 과정을 겪어나가야 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가리켜 [장소의 미시정치: micropolitics of place]라 부르기도 한다.
장소에 흩어져 있는 현상들을 우리의 일상과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있는 열린 감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장소에 포개져 있는 사연들을 오늘의 의미로 살아 남기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의 종축을 따라 움직이는 일정한 학습을 필요로 하게된다.

정동은 현재 매우 시끄럽다. 미국대사관과 직원 숙소 건립문제가 첨예한 이슈로 되어있다. 그 이외에도 최근 러시아 대사관이 우악스럽게 들어섰고 캐나다 대사관도 신축을 서두르고 있다. 구한말 열강들이 이 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이후 이 나라와 외부세계 사이의 접촉의 극점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 날 그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이 이곳에 자리했기 때문으로 되어있다. 미 대사관의 숙소 자리도 경운궁 시절 어진을 봉안했던 선원전 자리란다. 이 싸움은 언뜻 외부로부터의 힘(원심적인)과 내부로부터의 힘(구심적인)힘 사이의 싸움으로 비춰진다. 그런데 사실 조금 더 이 지역을 들여다보면 그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힘에는 정치외교와 연관된 세력말고도 교육(배재와 이화학당), 종교(감리교, 천주교, 성공회 그리고 구세군)등의 힘이 뒤를 이어 들어와 앉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종교와 교육의 힘들은 이미 상당 부분 토착화의 과정을 겪어왔으며 어느 결에 이미우리 옆에 친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 편 도시가 점점 시민사회의 도시로 넘어가면서 이 지역에는 적지 않은 문화시설들이 함께 자리해 나가고 있다. 정동극장이 들어섰고 대법원은 시립미술관으로 바뀌었다. 과거 문화방송 건물은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문화체육관과 ccc회관도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시청 별관도 아마 적절한 문화적인 프로그램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몇 개의 공원이 생겼고 덕수궁 길이 새로이 단장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들은 위에 언급한 외부로부터의 힘과 내부로부터의 구심적인 힘들과는 또 다른 세 번째의 힘이다. 그리고 달리 표현하면 시민사회의 권력이라 말할 수 있다. 오늘 날 정동에는 이러한 세 가지의 힘(권력)들이 서로 다툼을 벌려 나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나는 그 다툼이 방향을 올바로 잡으면 정동이라는 이 지역의 독특한 성격을 아주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 판단한다.
이화학당은 1886년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 공사관이 이 지역에 설치된 지 3년 후이며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기 10년 전이다. 이화라는 고종이 하사한 교명을 갖고 있으며 오늘 날 이화여대를 분리해 가가게 한 모태이다. 설립자 스크랜턴은 근대적인 여성을 길러내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고 미국 감리교의 학풍은 언제나 리버럴했다. 한 해 먼저 설립된 배재 학당이 이 지역을 빠져나간 후에도 이화는 이 지역을 지키며 유관순 기념관과 그 유명한 야외음악당을 통해 한 때 장안의 유수한 문화시설로서의 역할도 해 주었다. 그런 학교에서 100주년 기념관을 짓겠다고 했다. 문화시설의 프로그램이 절반을 차지하는 지명현상이 발표되었을 때 이미 해답은 나왔다. 지역의 특성, 학교와 도시와의 관계, 정동길의 미래가 그 해답이었다. 정동지역에 대한 새삼스러운 스터디가 시작되었고 계획의 모든 원칙들은 그 기준들에 의해 결정되어나갔다. 문화적인 시설들은 한 데 묶여 정동길과 새로운 마당을 사이에 두고 결합되었다. 학교와는 학교대로의 연결고리들이 만들어졌다. 발상의 빌미를 준 학교의 정책이 훌륭하고 지역에 또 하나의 충동을 일으킬 시설들에 기대를 건다.